2022년 8월 26일 금요일

RT @ohmynews_korea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친일파 #박병일 #일본군시베리아출병 #블라디보스토크독립운동 #친일청산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박병일 민족·국제김종성(qqqkim2000) 22.08.21 19:49ㅣ최종 업데이트 22.08.21 19:49글씨 크게보기인쇄본문듣기원고료로 응원하기 95 27 13 화신백화점 사장인 친일파 박흥식은 반민특위 체포 1호다. 1949년 1월 8일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붙들렸다. 그가 내세운 변명 논리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해방 이듬해에 자금 횡령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도 그랬다. 일제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비행기회사를 설립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재판장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재판 다음날 발행된 1946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 '박흥식 공판'에 따르면, 일제 당국의 계속되는 권유를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했노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박흥식과 비슷한 논리를 내세웠다.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다는 것이 친일파들의 일반적인 변명이다. 일본의 고급 밀정 하지만 친일파 박병일의 삶은 그런 변명이 구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친일을 했고, 친일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박병일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6권과 일본 경찰 기록에는 박용환이란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친일인명사전>과 일본 재판 기록인 <박병일 소송사건철>에는 박병일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가 태어난 것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2년 뒤인 1878년 7월 1일 경기도 광주에서였다. 그는 비교적 일찍 서양문물을 접했다. 14세 때인 1892년에 한양에서 기독교청년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양 종로에 그의 사업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잡화상과 금융업을 경영했다. 그의 사업 무대는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졌다. 사업 실패에 따른 결과였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박병일 소송사건철>에 따르면, 1917년 3월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그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한편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으로 일했다. 39세 나이에 이국땅에서 새 삶을 개척한 것이다. ▲ 박병일 소송사건철 ⓒ 국가기록원 그런데 그의 새로운 삶에 동반된 것이 있다. 친일매국행위가 그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진 그의 사업은 일본을 돕는 일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제1권은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일본군에게 식량과 군수품을 운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고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에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고 뒤이어 1918년 3월 러시아가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일본·미국·영국·프랑스가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간섭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시베리아로 출병한 일본군을 박병일이 돕게 됐던 것이다. 그의 친일은 군수품 제공뿐 아니라 첩보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 "192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 촌락에서 주민이 독립군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주둔 일본군에 전하는 등 첩보 활동을 했다"고 위 사전은 말한다. 이런 인물이 1921년에 조선인연합민회 부회장이 되고 그 뒤 회장까지 됐다. 이 지역을 무대로 한 항일투쟁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차질을 빚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현지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항일조직인 한인사회당이 그를 습격한 배경 역시 이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박병일과 일본의 커넥션은 시베리아 주둔 일본군과의 연계로 끝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츠루키치와도 커넥션이 있었다. 그는 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현지 정보를 총독부에 제공했다. 이 정도면 고급 밀정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총독부 경찰 총수기 저 멀리 시베리아의 박병일과 직접 소통한 배경은 박환 수원대 교수의 논문 '러시아혁명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거류민회의 조직과 활동'에 언급된 한 대목에도 나타난다. 2017년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0에 수록된 이 논문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국내에서 전개된 3·1운동은 러시아 지역의 3·1운동 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양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3·1운동 전개 이후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은 국내와 밀접한 연락 관계를 맺으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는 러시아 및 해외 지역의 항일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고자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처음 이주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이주한 뒤로 박병일은 일본과 긴밀히 연계된 행적을 밟아나갔다. 일본군 떠나자 피신 이런 존재 양식으로 인해 그는 일본이 시베리아를 떠날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22년 말 시베리아에서 일본군이 철병하자 이듬해 1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사할린 진강으로 피신했다"고 <친일인명사전>은 말한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 박병일은 서울 종로에서 사업에 실패해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도 실패해 사할린으로 옮겨갔다. 순수한 상업 경영으로 정면승부하지 않고 매국행위로 돌파구를 뚫으려다 시베리아에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정상적인 사업으로 곳간을 채우려 하려 하지 않고 친일 행위로 손쉽게 돈을 벌려 한 자의 모습이다. 사할린에 간 뒤로도 일본과 협력해 농지개척 사업을 벌이던 그는 1930년대에는 도쿄로 무대를 옮겼다. 사할린 활동 역시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도쿄에 거주한 이후의 박병일은 일반적인 친일파에게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행보를 걷게 된다.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게 됐다. <박병일 소송사건철>이라는 문서철이 작성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상대로 소송 시베리아 항일운동이 조선 본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고자 총독부가 시베리아 한국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인 사업이 있다. 조선인 구제사업 명목으로 식량 등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현지 한국인들이 항일세력에 기울지 않도록 하고자 그런 프로젝트를 벌였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이었던 박병일도 그 사업에 당연히 참여했다. 그런데 이 사업 과정에서 그의 개인 자금도 들어갔다. 박병일 사건철에 따르면 약 2만 엔의 금전 지출이 발생했다. 이 같은 지출을 보상해달라고 일본 법원에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박병일이 소송을 할 당시, 도쿄에서 객지 학생이 1개월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등록금을 제외하고 대략 40엔이었다. 1934년 2월 17일자 <동아일보> 6면 우상단에 따르면, 하숙비·점심값·책값·교통비·오락비·잡비 등으로 대략 그 정도가 들어갔다. 박병일의 친일행위로 발생한 금전 지출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한 돈을 들여 친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부역이 자발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업상 이익을 위해 그만한 돈을 투자했으리라는 합리적 해석을 갖게 한다. 친일이 이익을 준다는 계산이 행위에 저변에 깔려 있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에게서 나온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공허한 변명에 불과함을 박병일의 소송이 보여준다. 일본을 위해 2만엔 정도의 돈을 썼다면, 일본과의 협력으로 인해 박병일이 얻게 된 사업상 이익도 당연히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사업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소송으로 인해 총독부가 얼마나 황당해 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송은 볼썽사납게 끝나지는 않았다. 재판부의 화해 권유로 결국 양측이 합의에 도달했다. 박병일이 지출했다는 금액 중에서 4500원을 총독부가 보전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총독부는 1936년 6월까지 이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애초에 요구한 금액을 다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친일로 인한 금전 지출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전 받았다. 그런 점에서 꽤 이례적인 친일파였다고 할 수 있다. 친일활동을 하면서 금전출납 장부까지 세심히 기록하는 '계산적인 친일파'였던 셈이다. 그 뒤 박병일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출생 연도만 나타나고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친일파 #친일청산 #블라디보스토크 독립운동 #박병일 #일본군 시베리아 출병 구독하기 프리미엄 김종성의 '히, 스토리' 이전글 위안부 할머니들 또 모욕한 램지어, 선 넘었다 http://omn.kr/20c7k

 RT @ohmynews_korea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친일파 #박병일 #일본군시베리아출병 #블라디보스토크독립운동 #친일청산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박병일
민족·국제김종성(qqqkim2000)
22.08.21 19:49ㅣ최종 업데이트 22.08.21 19:49글씨 크게보기인쇄본문듣기원고료로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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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3
화신백화점 사장인 친일파 박흥식은 반민특위 체포 1호다. 1949년 1월 8일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붙들렸다. 그가 내세운 변명 논리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해방 이듬해에 자금 횡령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도 그랬다. 일제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비행기회사를 설립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재판장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재판 다음날 발행된 1946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 '박흥식 공판'에 따르면, 일제 당국의 계속되는 권유를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했노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박흥식과 비슷한 논리를 내세웠다.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다는 것이 친일파들의 일반적인 변명이다.
일본의 고급 밀정
하지만 친일파 박병일의 삶은 그런 변명이 구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친일을 했고, 친일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박병일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6권과 일본 경찰 기록에는 박용환이란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친일인명사전>과 일본 재판 기록인 <박병일 소송사건철>에는 박병일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가 태어난 것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2년 뒤인 1878년 7월 1일 경기도 광주에서였다. 그는 비교적 일찍 서양문물을 접했다. 14세 때인 1892년에 한양에서 기독교청년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양 종로에 그의 사업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잡화상과 금융업을 경영했다.
그의 사업 무대는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졌다. 사업 실패에 따른 결과였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박병일 소송사건철>에 따르면, 1917년 3월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그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한편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으로 일했다. 39세 나이에 이국땅에서 새 삶을 개척한 것이다.
▲ 박병일 소송사건철 ⓒ 국가기록원
그런데 그의 새로운 삶에 동반된 것이 있다. 친일매국행위가 그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진 그의 사업은 일본을 돕는 일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제1권은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일본군에게 식량과 군수품을 운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고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에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고 뒤이어 1918년 3월 러시아가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일본·미국·영국·프랑스가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간섭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시베리아로 출병한 일본군을 박병일이 돕게 됐던 것이다.
그의 친일은 군수품 제공뿐 아니라 첩보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 "192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 촌락에서 주민이 독립군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주둔 일본군에 전하는 등 첩보 활동을 했다"고 위 사전은 말한다.
이런 인물이 1921년에 조선인연합민회 부회장이 되고 그 뒤 회장까지 됐다. 이 지역을 무대로 한 항일투쟁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차질을 빚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현지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항일조직인 한인사회당이 그를 습격한 배경 역시 이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박병일과 일본의 커넥션은 시베리아 주둔 일본군과의 연계로 끝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츠루키치와도 커넥션이 있었다. 그는 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현지 정보를 총독부에 제공했다. 이 정도면 고급 밀정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총독부 경찰 총수기 저 멀리 시베리아의 박병일과 직접 소통한 배경은 박환 수원대 교수의 논문 '러시아혁명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거류민회의 조직과 활동'에 언급된 한 대목에도 나타난다. 2017년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0에 수록된 이 논문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국내에서 전개된 3·1운동은 러시아 지역의 3·1운동 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양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3·1운동 전개 이후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은 국내와 밀접한 연락 관계를 맺으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는 러시아 및 해외 지역의 항일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고자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처음 이주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이주한 뒤로 박병일은 일본과 긴밀히 연계된 행적을 밟아나갔다.
일본군 떠나자 피신
이런 존재 양식으로 인해 그는 일본이 시베리아를 떠날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22년 말 시베리아에서 일본군이 철병하자 이듬해 1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사할린 진강으로 피신했다"고 <친일인명사전>은 말한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
박병일은 서울 종로에서 사업에 실패해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도 실패해 사할린으로 옮겨갔다. 순수한 상업 경영으로 정면승부하지 않고 매국행위로 돌파구를 뚫으려다 시베리아에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정상적인 사업으로 곳간을 채우려 하려 하지 않고 친일 행위로 손쉽게 돈을 벌려 한 자의 모습이다.
사할린에 간 뒤로도 일본과 협력해 농지개척 사업을 벌이던 그는 1930년대에는 도쿄로 무대를 옮겼다. 사할린 활동 역시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도쿄에 거주한 이후의 박병일은 일반적인 친일파에게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행보를 걷게 된다.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게 됐다. <박병일 소송사건철>이라는 문서철이 작성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상대로 소송
시베리아 항일운동이 조선 본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고자 총독부가 시베리아 한국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인 사업이 있다. 조선인 구제사업 명목으로 식량 등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현지 한국인들이 항일세력에 기울지 않도록 하고자 그런 프로젝트를 벌였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이었던 박병일도 그 사업에 당연히 참여했다. 그런데 이 사업 과정에서 그의 개인 자금도 들어갔다. 박병일 사건철에 따르면 약 2만 엔의 금전 지출이 발생했다. 이 같은 지출을 보상해달라고 일본 법원에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박병일이 소송을 할 당시, 도쿄에서 객지 학생이 1개월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등록금을 제외하고 대략 40엔이었다. 1934년 2월 17일자 <동아일보> 6면 우상단에 따르면, 하숙비·점심값·책값·교통비·오락비·잡비 등으로 대략 그 정도가 들어갔다. 박병일의 친일행위로 발생한 금전 지출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한 돈을 들여 친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부역이 자발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업상 이익을 위해 그만한 돈을 투자했으리라는 합리적 해석을 갖게 한다. 친일이 이익을 준다는 계산이 행위에 저변에 깔려 있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에게서 나온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공허한 변명에 불과함을 박병일의 소송이 보여준다.
일본을 위해 2만엔 정도의 돈을 썼다면, 일본과의 협력으로 인해 박병일이 얻게 된 사업상 이익도 당연히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사업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소송으로 인해 총독부가 얼마나 황당해 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송은 볼썽사납게 끝나지는 않았다. 재판부의 화해 권유로 결국 양측이 합의에 도달했다. 박병일이 지출했다는 금액 중에서 4500원을 총독부가 보전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총독부는 1936년 6월까지 이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애초에 요구한 금액을 다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친일로 인한 금전 지출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전 받았다. 그런 점에서 꽤 이례적인 친일파였다고 할 수 있다. 친일활동을 하면서 금전출납 장부까지 세심히 기록하는 '계산적인 친일파'였던 셈이다. 그 뒤 박병일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출생 연도만 나타나고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친일파 #친일청산 #블라디보스토크 독립운동 #박병일 #일본군 시베리아 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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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mn.kr/20c7k RT @ohmynews_korea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친일파 #박병일 #일본군시베리아출병 #블라디보스토크독립운동 #친일청산
일제의 고급 밀정, 반성 대신 "내 돈 돌려달라"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박병일
민족·국제김종성(qqqkim2000)
22.08.21 19:49ㅣ최종 업데이트 22.08.21 19:49글씨 크게보기인쇄본문듣기원고료로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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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백화점 사장인 친일파 박흥식은 반민특위 체포 1호다. 1949년 1월 8일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붙들렸다. 그가 내세운 변명 논리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해방 이듬해에 자금 횡령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도 그랬다. 일제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비행기회사를 설립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재판장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재판 다음날 발행된 1946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 '박흥식 공판'에 따르면, 일제 당국의 계속되는 권유를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했노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박흥식과 비슷한 논리를 내세웠다.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다는 것이 친일파들의 일반적인 변명이다.
일본의 고급 밀정
하지만 친일파 박병일의 삶은 그런 변명이 구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친일을 했고, 친일 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박병일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6권과 일본 경찰 기록에는 박용환이란 이름으로 소개돼 있다. <친일인명사전>과 일본 재판 기록인 <박병일 소송사건철>에는 박병일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가 태어난 것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2년 뒤인 1878년 7월 1일 경기도 광주에서였다. 그는 비교적 일찍 서양문물을 접했다. 14세 때인 1892년에 한양에서 기독교청년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양 종로에 그의 사업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잡화상과 금융업을 경영했다.
그의 사업 무대는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졌다. 사업 실패에 따른 결과였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수록된 <박병일 소송사건철>에 따르면, 1917년 3월 시베리아로 이주했고 그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한편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으로 일했다. 39세 나이에 이국땅에서 새 삶을 개척한 것이다.
▲ 박병일 소송사건철 ⓒ 국가기록원
그런데 그의 새로운 삶에 동반된 것이 있다. 친일매국행위가 그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진 그의 사업은 일본을 돕는 일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제1권은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일본군에게 식량과 군수품을 운반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고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에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고 뒤이어 1918년 3월 러시아가 독일과 단독으로 강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일본·미국·영국·프랑스가 러시아를 상대로 이른바 간섭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시베리아로 출병한 일본군을 박병일이 돕게 됐던 것이다.
그의 친일은 군수품 제공뿐 아니라 첩보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 "192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 촌락에서 주민이 독립군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등의 정보를 주둔 일본군에 전하는 등 첩보 활동을 했다"고 위 사전은 말한다.
이런 인물이 1921년에 조선인연합민회 부회장이 되고 그 뒤 회장까지 됐다. 이 지역을 무대로 한 항일투쟁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차질을 빚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현지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항일조직인 한인사회당이 그를 습격한 배경 역시 이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박병일과 일본의 커넥션은 시베리아 주둔 일본군과의 연계로 끝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츠루키치와도 커넥션이 있었다. 그는 이 관계를 지속하면서 현지 정보를 총독부에 제공했다. 이 정도면 고급 밀정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총독부 경찰 총수기 저 멀리 시베리아의 박병일과 직접 소통한 배경은 박환 수원대 교수의 논문 '러시아혁명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거류민회의 조직과 활동'에 언급된 한 대목에도 나타난다. 2017년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0에 수록된 이 논문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국내에서 전개된 3·1운동은 러시아 지역의 3·1운동 발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양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3·1운동 전개 이후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은 국내와 밀접한 연락 관계를 맺으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는 러시아 및 해외 지역의 항일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고자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처음 이주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 이주한 뒤로 박병일은 일본과 긴밀히 연계된 행적을 밟아나갔다.
일본군 떠나자 피신
이런 존재 양식으로 인해 그는 일본이 시베리아를 떠날 때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22년 말 시베리아에서 일본군이 철병하자 이듬해 1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사할린 진강으로 피신했다"고 <친일인명사전>은 말한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
박병일은 서울 종로에서 사업에 실패해 시베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도 실패해 사할린으로 옮겨갔다. 순수한 상업 경영으로 정면승부하지 않고 매국행위로 돌파구를 뚫으려다 시베리아에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정상적인 사업으로 곳간을 채우려 하려 하지 않고 친일 행위로 손쉽게 돈을 벌려 한 자의 모습이다.
사할린에 간 뒤로도 일본과 협력해 농지개척 사업을 벌이던 그는 1930년대에는 도쿄로 무대를 옮겼다. 사할린 활동 역시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도쿄에 거주한 이후의 박병일은 일반적인 친일파에게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행보를 걷게 된다.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게 됐다. <박병일 소송사건철>이라는 문서철이 작성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상대로 소송
시베리아 항일운동이 조선 본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고자 총독부가 시베리아 한국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인 사업이 있다. 조선인 구제사업 명목으로 식량 등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현지 한국인들이 항일세력에 기울지 않도록 하고자 그런 프로젝트를 벌였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연합민회 회장이었던 박병일도 그 사업에 당연히 참여했다. 그런데 이 사업 과정에서 그의 개인 자금도 들어갔다. 박병일 사건철에 따르면 약 2만 엔의 금전 지출이 발생했다. 이 같은 지출을 보상해달라고 일본 법원에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박병일이 소송을 할 당시, 도쿄에서 객지 학생이 1개월 생활하는 데 드는 비용은 등록금을 제외하고 대략 40엔이었다. 1934년 2월 17일자 <동아일보> 6면 우상단에 따르면, 하숙비·점심값·책값·교통비·오락비·잡비 등으로 대략 그 정도가 들어갔다. 박병일의 친일행위로 발생한 금전 지출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한 돈을 들여 친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부역이 자발적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업상 이익을 위해 그만한 돈을 투자했으리라는 합리적 해석을 갖게 한다. 친일이 이익을 준다는 계산이 행위에 저변에 깔려 있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친일파들에게서 나온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공허한 변명에 불과함을 박병일의 소송이 보여준다.
일본을 위해 2만엔 정도의 돈을 썼다면, 일본과의 협력으로 인해 박병일이 얻게 된 사업상 이익도 당연히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사업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소송으로 인해 총독부가 얼마나 황당해 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송은 볼썽사납게 끝나지는 않았다. 재판부의 화해 권유로 결국 양측이 합의에 도달했다. 박병일이 지출했다는 금액 중에서 4500원을 총독부가 보전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총독부는 1936년 6월까지 이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애초에 요구한 금액을 다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친일로 인한 금전 지출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전 받았다. 그런 점에서 꽤 이례적인 친일파였다고 할 수 있다. 친일활동을 하면서 금전출납 장부까지 세심히 기록하는 '계산적인 친일파'였던 셈이다. 그 뒤 박병일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출생 연도만 나타나고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친일파 #친일청산 #블라디보스토크 독립운동 #박병일 #일본군 시베리아 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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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한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실체 본문: 창 2-3장, 겔 28장, 계 17-18장, 단 2-4장, 계 22장 참고 하나님의 역사 6천 년간의 전쟁은 사실상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전쟁이다. 계시록 성취 때 선악나무는 6천 년 만에 끝나고,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한다. 이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의 목자와 신천지이다. 왜 보고도 모르는가? 요 1장에 본바 태초의 말씀은 하나님이요, 창조력이 있으며, 이 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있다(요 1:1-4 참고). 하니 생명나무는 생명체요 말씀이다. 기록된바 천국의 왕 예수님도 나무(참 포도나무)였고(요 15장),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였다(단 2-4장). 하나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을 가진 구원자요 생명나무이며, 느부갓네살은 말씀이 없는 멸망자요 선악과나무였다. 기록된바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요,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들이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셨다(마 13:31-32). 단 4장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요, 들짐승이 그 그늘에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가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하였으니, 이 나무는 지옥 나무였다. 이사야 5장에서 본바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도나무라 하심같이,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옛 비밀한 것을 비유를 베풀어 말씀하신 것이다(시 78:1-6).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가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고,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 곧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하셨으니, 예수님이 곧 생명나무였다. 그리고 이 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었다(요 15:5 참고). 이와 같이 오늘날 태초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루신 신천지 12지파가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인 성도들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다. 하면 계 22장 2절 말씀과 신천지의 현실이 똑같지 않은가? 온 세상에서 신천지만이 계 22장 2절의 생명나무와 똑같다. 또한 신천지는 태초의 말씀뿐 아니라 2천 년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계시록 1장에서 22장까지 계시록 전장을 통달하였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씨로 났고, 추수되었으며, 인 맞았다. 그리고 열두 가지 곧 12지파를 이루어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곳은 오직 신천지뿐이다. 해서 신천지 12지파는 생명나무이다. 이 나무의 열매 곧 계시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 안에 생명과 빛이 있으므로, 그 사람 또한 생명나무가 된다. 반면, 교리 곧 태초의 말씀이 없는 자는 목사든 신학 박사든 교인이든 간에 생명과 빛이 없는 선악나무이다. 하여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라고 하신 것이다. 생명은 말씀 안에 있다 하였으니, 누가 말씀이 있고 누가 말씀이 없는지는 신약(새 언약) 성경으로 시험을 쳐 보면 알 것이다. 성경 시험으로 누가 말씀이 있는 자인지 확인하라. “목사님들, 신학. 박사님들, 신천지와 성경 시험 한번 쳐 보시겠습니까? 우리나라 헌법 제20조 1, 2항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데 이를 왜 안 지키십니까? 또 헌법 제1조 1, 2항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이 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국민을 둘로 분열케 하는 것은 최악의 죄악이 될 것입니다. 참 종교 기관에서 시험을 쳐서 합격한 자만이 목사 자격을 갖게 해야 합니다. 말라기 2장에서와 같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 입에서 백성들이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목사 안수를 하여,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는 소경과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같은 엉터리 목사들은 사단, 마귀 소속입니다. 우리나라는 바보도 안수만 받으면 목사가 되니, 흔한 것이 목사입니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역사 6천 년 중 최고의 진리를 가졌습니다. 신천지는 1. 하나님의 씨로 났고, 2. 추수되었고, 3. 인 맞았으며, 4. 하나님의 약속의 새 나라 신천지 12지파가 되었고, 5.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6. 지상 그 누구도 2천 년간 알지 못한 계시록을 통달하였고, 7. 새 언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신천지에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말씀이 함께하신다. 또한 아담 범죄 이후 지구촌에서 새 언약 계시록을 통달하는 곳은 신천지뿐이며,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가 출현한 것도 처음이며, 용의 무리와 싸워 이긴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하나님과 천국이 돌아오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는 하늘나라 특수 독립군 백마부대이다.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과 그 행위를 보아 신천지가 누구의 소속인지 알 것이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하나님과 천국이 함께하시고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이다. 아멘.

성경이 말한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실체

본문: 창 2-3장, 겔 28장, 계 17-18장, 단 2-4장, 계 22장 참고

하나님의 역사 6천 년간의 전쟁은 사실상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전쟁이다. 계시록 성취 때 선악나무는 6천 년 만에 끝나고,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한다. 이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의 목자와 신천지이다. 왜 보고도 모르는가?

요 1장에 본바 태초의 말씀은 하나님이요, 창조력이 있으며, 이 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있다(요 1:1-4 참고). 하니 생명나무는 생명체요 말씀이다. 기록된바 천국의 왕 예수님도 나무(참 포도나무)였고(요 15장),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였다(단 2-4장). 하나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을 가진 구원자요 생명나무이며, 느부갓네살은 말씀이 없는 멸망자요 선악과나무였다.

기록된바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요,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들이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셨다(마 13:31-32). 단 4장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요, 들짐승이 그 그늘에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가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하였으니, 이 나무는 지옥 나무였다. 이사야 5장에서 본바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도나무라 하심같이,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옛 비밀한 것을 비유를 베풀어 말씀하신 것이다(시 78:1-6).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가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고,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 곧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하셨으니, 예수님이 곧 생명나무였다. 그리고 이 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었다(요 15:5 참고). 이와 같이 오늘날 태초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루신 신천지 12지파가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인 성도들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다. 하면 계 22장 2절 말씀과 신천지의 현실이 똑같지 않은가? 온 세상에서 신천지만이 계 22장 2절의 생명나무와 똑같다. 또한 신천지는 태초의 말씀뿐 아니라 2천 년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계시록 1장에서 22장까지 계시록 전장을 통달하였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씨로 났고, 추수되었으며, 인 맞았다. 그리고 열두 가지 곧 12지파를 이루어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곳은 오직 신천지뿐이다. 해서 신천지 12지파는 생명나무이다. 이 나무의 열매 곧 계시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 안에 생명과 빛이 있으므로, 그 사람 또한 생명나무가 된다. 반면, 교리 곧 태초의 말씀이 없는 자는 목사든 신학 박사든 교인이든 간에 생명과 빛이 없는 선악나무이다. 하여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라고 하신 것이다. 생명은 말씀 안에 있다 하였으니, 누가 말씀이 있고 누가 말씀이 없는지는 신약(새 언약) 성경으로 시험을 쳐 보면 알 것이다. 성경 시험으로 누가 말씀이 있는 자인지 확인하라.

“목사님들, 신학. 박사님들, 신천지와 성경 시험 한번 쳐 보시겠습니까? 

우리나라 헌법 제20조 1, 2항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데 이를 왜 안 지키십니까? 또 헌법 제1조 1, 2항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이 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국민을 둘로 분열케 하는 것은 최악의 죄악이 될 것입니다.

참 종교 기관에서 시험을 쳐서 합격한 자만이 목사 자격을 갖게 해야 합니다. 말라기 2장에서와 같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 입에서 백성들이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목사 안수를 하여,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는 소경과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같은 엉터리 목사들은 사단, 마귀 소속입니다.

우리나라는 바보도 안수만 받으면 목사가 되니, 흔한 것이 목사입니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역사 6천 년 중 최고의 진리를 가졌습니다.

신천지는 1. 하나님의 씨로 났고, 2. 추수되었고, 3. 인 맞았으며, 4. 하나님의 약속의 새 나라 신천지 12지파가 되었고, 5.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6. 지상 그 누구도 2천 년간 알지 못한 계시록을 통달하였고, 7. 새 언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신천지에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말씀이 함께하신다. 또한 아담 범죄 이후 지구촌에서 새 언약 계시록을 통달하는 곳은 신천지뿐이며,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가 출현한 것도 처음이며, 용의 무리와 싸워 이긴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하나님과 천국이 돌아오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는 하늘나라 특수 독립군 백마부대이다.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과 그 행위를 보아 신천지가 누구의 소속인지 알 것이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하나님과 천국이 함께하시고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이다.  아멘.

성경이 말한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실체

본문: 창 2-3장, 겔 28장, 계 17-18장, 단 2-4장, 계 22장 참고

하나님의 역사 6천 년간의 전쟁은 사실상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의 전쟁이다. 계시록 성취 때 선악나무는 6천 년 만에 끝나고, 생명나무가 다시 등장한다. 이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의 목자와 신천지이다. 왜 보고도 모르는가?

요 1장에 본바 태초의 말씀은 하나님이요, 창조력이 있으며, 이 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있다(요 1:1-4 참고). 하니 생명나무는 생명체요 말씀이다. 기록된바 천국의 왕 예수님도 나무(참 포도나무)였고(요 15장),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였다(단 2-4장). 하나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을 가진 구원자요 생명나무이며, 느부갓네살은 말씀이 없는 멸망자요 선악과나무였다.

기록된바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요,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들이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셨다(마 13:31-32). 단 4장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큰 나무요, 들짐승이 그 그늘에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가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하였으니, 이 나무는 지옥 나무였다. 이사야 5장에서 본바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도나무라 하심같이,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나무로 비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옛 비밀한 것을 비유를 베풀어 말씀하신 것이다(시 78:1-6). 

작은 씨를 심어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새가 와서 깃들이는 것이 천국이라 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참 포도나무라 하셨고,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 곧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하셨으니, 예수님이 곧 생명나무였다. 그리고 이 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었다(요 15:5 참고). 이와 같이 오늘날 태초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루신 신천지 12지파가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인 성도들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다. 하면 계 22장 2절 말씀과 신천지의 현실이 똑같지 않은가? 온 세상에서 신천지만이 계 22장 2절의 생명나무와 똑같다. 또한 신천지는 태초의 말씀뿐 아니라 2천 년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계시록 1장에서 22장까지 계시록 전장을 통달하였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씨로 났고, 추수되었으며, 인 맞았다. 그리고 열두 가지 곧 12지파를 이루어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곳은 오직 신천지뿐이다. 해서 신천지 12지파는 생명나무이다. 이 나무의 열매 곧 계시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 안에 생명과 빛이 있으므로, 그 사람 또한 생명나무가 된다. 반면, 교리 곧 태초의 말씀이 없는 자는 목사든 신학 박사든 교인이든 간에 생명과 빛이 없는 선악나무이다. 하여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라고 하신 것이다. 생명은 말씀 안에 있다 하였으니, 누가 말씀이 있고 누가 말씀이 없는지는 신약(새 언약) 성경으로 시험을 쳐 보면 알 것이다. 성경 시험으로 누가 말씀이 있는 자인지 확인하라.

“목사님들, 신학. 박사님들, 신천지와 성경 시험 한번 쳐 보시겠습니까? 

우리나라 헌법 제20조 1, 2항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데 이를 왜 안 지키십니까? 또 헌법 제1조 1, 2항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이 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국민을 둘로 분열케 하는 것은 최악의 죄악이 될 것입니다.

참 종교 기관에서 시험을 쳐서 합격한 자만이 목사 자격을 갖게 해야 합니다. 말라기 2장에서와 같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그 입에서 백성들이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목사 안수를 하여,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는 소경과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같은 엉터리 목사들은 사단, 마귀 소속입니다.

우리나라는 바보도 안수만 받으면 목사가 되니, 흔한 것이 목사입니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역사 6천 년 중 최고의 진리를 가졌습니다.

신천지는 1. 하나님의 씨로 났고, 2. 추수되었고, 3. 인 맞았으며, 4. 하나님의 약속의 새 나라 신천지 12지파가 되었고, 5.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그 잎은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6. 지상 그 누구도 2천 년간 알지 못한 계시록을 통달하였고, 7. 새 언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신천지에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말씀이 함께하신다. 또한 아담 범죄 이후 지구촌에서 새 언약 계시록을 통달하는 곳은 신천지뿐이며,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가 출현한 것도 처음이며, 용의 무리와 싸워 이긴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하나님과 천국이 돌아오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는 하늘나라 특수 독립군 백마부대이다.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과 그 행위를 보아 신천지가 누구의 소속인지 알 것이다. 오늘날 창조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하나님과 천국이 함께하시고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  맺는  생명나무이다.  아멘.

2022년 8월 24일 수요일

한국 교회 목사님들께 목사님들은 한국 교회 곧 개신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는 청지기교육원이 문을 닫은 후 단 2장과 같이 여러 교단이 모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약칭 한기총) 등을 결성하였습니다. CBS에서 방송한 신천지 비방 프로그램 8부작에서 개종 목사인 신○○ 목사가 말하기를, 개신교의 문제는 교리가 없는 것이고, 신천지에는 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기총 지도 목사도 개신교에는 교리가 없다고 말했으며, 전(前) 한기총 대표회장 목사는 TV를 통해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도 자기 말 안 들으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에스겔 28장의 덮는 그룹보다도 더 교만한 것이 아닌지요? 대표회장의 말이 이러할진대, 그 소속들도 같은 진액을 받은 같은 나무가 아닌가요? 신천지 12지파장들은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온 세계 목사님들에게 약속된 계시록의 예언의 뜻과 그 성취된 실상에 대해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증거한 바가 있습니다. 이 증거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성경 말씀으로 지적하라 하였으나, 그 증거가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 한 분도 없었습니다. 반면, 세미나 이후 국내외 많은 교회 목사들이 신천지와 MOU를 맺고 신천지 선교센터 교재와 강의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도 90여 개 교회의 목사들이 신천지와 MOU를 맺었고, 신천지의 교리를 가르치며 부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나라 바벨론의 비밀(계 17장)을 알려주셨습니다. 음녀가 앉은 일곱 머리와 열 뿔 짐승은 계 13장의 하늘 장막에 침입하여 성도들의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한 자들이었고, 이 표를 받은 자들은 용의 무리 일곱 머리와 열 뿔 짐승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을 바벨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는 계 13장과 12장에서 하늘 장막에 들어온 음녀와 짐승이 계 17-18장의 사단 곧 용의 무리 바벨론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목사님들은 계 22장 18-19절의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은 계시록을 가감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저주(재앙)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계시록을 통달하는 신천지가 볼 때, 개신교 목사들과 성도들은 다 새 언약 계시록을 가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계시록 시험을 쳐 보면 알 것입니다. 개신교는 다 계시록을 가감했으므로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계시록을 가감하고도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 목자입니다. 목사님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까? 마 13장 24-30절, 37-39절의 말씀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나는 누구의 씨로 났는가? 나는 참으로 신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는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볼 것입니다.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등과 기름과 예복을 준비했습니까? 하나님의 법인 새 언약 계시록을 마음에 새겨(히 8:7-13) 인 맞았습니까? 하나님의 씨로 났습니까? 추수되었습니까? 약속의 나라 12지파 생명책에 등록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신약의 말씀은 신앙인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목사님은 신천지에게 얼마나 많은 핍박과 욕설을 했습니까? 또 얼마나 많이 신앙을 방해했습니까? 개신교 목사님들로 인해 죽임을 당한 신천지 성도 5명이 피의 신원(伸冤)을 호소하는 소리가 계 6장에서와 같이 들립니다. 목사님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고, 속하지 않았다면 듣지 않을 것입니다(요 8:37-47 참고). 예수님 초림 때 예수님을 따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예수님이 보내신 사자의 말을 듣고 지키는 자가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초림 때는 예수님이 겔 3장의 펼친 두루마리 책을 받아먹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셨고(마 15:24), 재림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봉한 책을 받아 인을 떼어 열어 이루셨고, 이때 곁에서 이를 다 본(계 22:8) 새요한에게 열린(계시) 책을 먹여 주시고(계 10장) 그를 교회들에게 보내어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계 22:16). 왜 예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 신천지를 욕하고 핍박하는 자는 신약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취 때의 성도는 계시록(계시 말씀)을 먹어야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계시록은 영생의 양식입니다. 천택지인(天擇之人)이 가지고 오는 영생의 양식은 바로 계시록입니다. 천국과 영생을 얻기 위해서 계시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구약을 이루셨으며, 신약을 예언하신 분입니다. 천주교에서 나온 루터교회를 시작으로 개신교가 있게 되었고, 개신교 중에는 장로교가 있습니다. 이 장로교는 살인자 칼빈이 만든 교단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장로교의 수가 적으나, 한국 개신교단은 장로교 중심의 연합 교단이라 할 정도로 장로교가 많고, 이 장로교가 개신교의 중심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나 칼빈이 창시한 장로교를 예수교라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칼빈이 절대 예정론을 주장했고, 강제 개종을 시켰으며, 절대 예정론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받는다고 하셨는데, 칼빈은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며 구원받을 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예수교의 교리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서 장로교를 예수교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칼빈의 절대 예정론을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교를 택할 것입니까? 신천지는 칼빈의 절대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신천지는 예수교입니다. 또 신천지는 신약 계시록을 통달합니다. 또 신천지는 신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씨로 났고, 추수되었고, 인 맞았으며, 약속대로 12지파로 창조되었습니다. 인류 최고의 진리를 가졌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사들이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아멘.

한국 교회 목사님들께

목사님들은 한국 교회 곧 개신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는 청지기교육원이 문을 닫은 후 단 2장과 같이 여러 교단이 모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약칭 한기총) 등을 결성하였습니다. CBS에서 방송한 신천지 비방 프로그램 8부작에서 개종 목사인 신○○ 목사가 말하기를, 개신교의 문제는 교리가 없는 것이고, 신천지에는 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기총 지도 목사도 개신교에는 교리가 없다고 말했으며, 전(前) 한기총 대표회장 목사는 TV를 통해 들은 바와 같이 하나님도 자기 말 안 들으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에스겔 28장의 덮는 그룹보다도 더 교만한 것이 아닌지요? 대표회장의 말이 이러할진대, 그 소속들도 같은 진액을 받은 같은 나무가 아닌가요?

신천지 12지파장들은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온 세계 목사님들에게 약속된 계시록의 예언의 뜻과 그 성취된 실상에 대해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증거한 바가 있습니다. 이 증거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성경 말씀으로 지적하라 하였으나, 그 증거가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 한 분도 없었습니다. 반면, 세미나 이후 국내외 많은 교회 목사들이 신천지와 MOU를 맺고 신천지 선교센터 교재와 강의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도 90여 개 교회의 목사들이 신천지와 MOU를 맺었고, 신천지의 교리를 가르치며 부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나라 바벨론의 비밀(계 17장)을 알려주셨습니다. 음녀가 앉은 일곱 머리와 열 뿔 짐승은 계 13장의 하늘 장막에 침입하여 성도들의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한 자들이었고, 이 표를 받은 자들은 용의 무리 일곱 머리와 열 뿔 짐승에게 경배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을 바벨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는 계 13장과 12장에서 하늘 장막에 들어온 음녀와 짐승이 계 17-18장의 사단 곧 용의 무리 바벨론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목사님들은 계 22장 18-19절의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은 계시록을 가감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저주(재앙)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계시록을 통달하는 신천지가 볼 때, 개신교 목사들과 성도들은 다 새 언약 계시록을 가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계시록 시험을 쳐 보면 알 것입니다. 개신교는 다 계시록을 가감했으므로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계시록을 가감하고도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 목자입니다. 목사님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까? 마 13장 24-30절, 37-39절의 말씀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나는 누구의 씨로 났는가? 나는 참으로 신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는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볼 것입니다.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등과 기름과 예복을 준비했습니까? 하나님의 법인 새 언약 계시록을 마음에 새겨(히 8:7-13) 인 맞았습니까? 하나님의 씨로 났습니까? 추수되었습니까? 약속의 나라 12지파 생명책에 등록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신약의 말씀은 신앙인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목사님은 신천지에게 얼마나 많은 핍박과 욕설을 했습니까? 또 얼마나 많이 신앙을 방해했습니까? 개신교 목사님들로 인해 죽임을 당한 신천지 성도 5명이 피의 신원(伸冤)을 호소하는 소리가 계 6장에서와 같이 들립니다.

목사님들이 하나님께 속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고, 속하지 않았다면 듣지 않을 것입니다(요 8:37-47 참고). 예수님 초림 때 예수님을 따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예수님이 보내신 사자의 말을 듣고 지키는 자가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초림 때는 예수님이 겔 3장의 펼친 두루마리 책을 받아먹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셨고(마 15:24), 재림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봉한 책을 받아 인을 떼어 열어 이루셨고, 이때 곁에서 이를 다 본(계 22:8) 새요한에게 열린(계시) 책을 먹여 주시고(계 10장) 그를 교회들에게 보내어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계 22:16).

왜 예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 신천지를 욕하고 핍박하는 자는 신약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취 때의 성도는 계시록(계시 말씀)을 먹어야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계시록은 영생의 양식입니다. 천택지인(天擇之人)이 가지고 오는 영생의 양식은 바로 계시록입니다. 천국과 영생을 얻기 위해서 계시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구약을 이루셨으며, 신약을 예언하신 분입니다. 

천주교에서 나온 루터교회를 시작으로 개신교가 있게 되었고, 개신교 중에는 장로교가 있습니다. 이 장로교는 살인자 칼빈이 만든 교단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장로교의 수가 적으나, 한국 개신교단은 장로교 중심의 연합 교단이라 할 정도로 장로교가 많고, 이 장로교가 개신교의 중심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나 칼빈이 창시한 장로교를 예수교라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칼빈이 절대 예정론을 주장했고, 강제 개종을 시켰으며, 절대 예정론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받는다고 하셨는데, 칼빈은 절대 예정론을 주장하며 구원받을 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예수교의 교리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서 장로교를 예수교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칼빈의 절대 예정론을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교를 택할 것입니까? 신천지는 칼빈의 절대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신천지는 예수교입니다. 또 신천지는 신약 계시록을 통달합니다. 또 신천지는 신약 계시록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씨로 났고, 추수되었고, 인 맞았으며, 약속대로 12지파로 창조되었습니다. 인류 최고의 진리를 가졌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천사들이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