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도 하나님이 만드신거 아닌가요?
대천사 루시퍼가 배신해서 악마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악마도 하나님이 만든거 아닌가요??
하나님이 천사를 만들었고 천사가 배신해서 악마가 되었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배신할 가능성을 모르고 만들었다고 생각해버리면
전지전능하신게 아닌것이 되어버리고
알고서 만들었다면... (이런걸 미필적고의라고 하나??)
천사가 배신할것을 알면서도 창조하셨다는 생각은...
(정말 기독교 전체를 흔들정도로 위험한?)
생각해보면 천사에계 교만이라는 마음도 같이 심어줘서
타락하게 되었고.. 악마가 되었다....
천사가 배신을 했고 신은 모든것을 알면서도 만들었으니까
뒤집어서 생각하면 천사중 일부는 악마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그렇다면 악마가 하는 모든 악행도 신의 알고 있었다는 것이며
기독교에서 대적하는 악마의 모든 악행... 죄악들은 신이 만들었다는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악마를 대적하고 적대시 하여 자신은 항상
빛 .. 절대선??? ㅡ.ㅡa
아.. 머리속에서 온갖생각들이 정리가 안되서 그런지 글을 혼란스럽게 썼네요
제 머리로는 절대 답이 안나오고 답답하기만 해서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지식을 빌리고 싶어요.
猫さん| 2007.09.09 02:19 수정됨 |조회 695|신고나도궁금답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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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런것입니다.
악마는 하나님이 만들었다기 보다.
하나님이 허용했다.. 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나면서 아이의 부모님을 사랑해주고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럴때 마다 부모님의 마음은 아프죠. 하지만 이런 아픔까지 모두 아이를 키우는것에 대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혹시 아이를 올바로 키우고 싶다고 해서 아이에게 최면을 걸어 로보트 처럼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도록 만드는 부모가 있을까요? 부모님들은 아이의 자발적인 사랑과 순종을 더 기뻐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같은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천사는 하인 같은 존재로 만드셨죠.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자유 의지라는 것을 허락하셨죠.
자유 의지란 말은 '하나님의 뜻 대로 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 를 이야기 합니다. 물론 루시퍼 같은 천사도 이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는 인간과 천사를 원하셨던 것이죠. 마치 자녀를 사랑하듯이..
하지만.. 지체님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절대선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이야기 합니다.
즉.. 인간과 천사에게 이런 자유의지를 허락하신다는것 자체가 이미 죄악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이 악마를 만드신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천사가 악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원자력을 개발하였지만.. 인간은 그것을 원자 폭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잘못은 아인슈타인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폭탄을 만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죠.
이해가 안가시는 부분이 있다면 가능한한 쪽지로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내용과 상관없거나 악의적인 댓글이 많이 달리는 관계로.. 쪽지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더 현명한 것 같고..
비브라토
| 2006.04.14 | 의견 쓰기 |신고답변추천해요 0
우주선을 타고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짝이 없다. 마치 파란 구슬처럼 평화롭게 공중에 떠 있는 우리의 지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실재로 지구의 구석 구석을 살펴보면 그 구석 구석마다 말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게된다. 죽음과 뜻하지 않은 재난들, 그리고 슬픔과 고통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지구. 전쟁과 테러, 홍수와 기근, 범죄들과 굶주림들로 얼룩져 있는 우리의 지구. 이러한 우리의 지구에는 오늘도 죄없는 자들이 희생당하고 있으며 고통이 그칠 날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 세상에 고통이 있는 것일까?
흔히들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시라면 왜 이 지구에 이렇게 고난과 슬픔과 죽음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를 곤궁에 빠뜨리는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라는 질문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을 어려움과 고통에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시는가?" 라는 질문이다. 가끔 필자는 이러한 도전들을 받는다. "하나님을 잘 믿던 내 남편이 왜 직장을 잃어야 합니까?" "그렇게 믿음이 좋던 사람이 왜 암에 걸려야 합니까?" "왜 내 아내가 나를 두고 떠났습니까?" "하나님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신 건가요?" 등등. 이 세상에는 대조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다. 아름다운 꽃밭과 황량한 사막, 풍요로운 논밭과 굶주려 뼈만 앙상한 인간들. 세상은 선과 악이 어우러져 있다. 우리는 건강과 질병,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함께 존재하는 대조를 보게된다. 아름다운 장미 밑에 가시가 있듯이 말이다. 과연 고통과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불행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행과 고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고통들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34:6은 하나님의 성품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러면 고통이 어디에서 왔을까? 마태복음 13:24~34을 읽어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배우게 되는데, 종들이 밭에서 가라지를 발견하고는 좋은 씨만 뿌렸는데 가라지가 왜 생겼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주인은 밤에 잘 때에 원수가 뿌리고 간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고, 종들이 그 가라지들을 뽑자고 제의하자 추수 때까지 놓아두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그 비유를 예수께서 설명하시는 과정에서 "밭은 세상이요"(마 13:38)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 세상을 죄와 고통이 없는 곳으로 창조하셨다. 푸른 풀밭에 꽃들이 만발하고 새들이 기쁘게 노래하며 슬픔과 질병이 전혀 없고 건강과 행복만 가득찬 곳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원수인 마귀가 거기에 죄와 사망과 고통의 씨를 뿌린 것이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예수께서 18년 동안 온 몸이 꼬부라져 있던 한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누가복음 13:16은 예수께서 그 여인을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른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의 책임은 사단에게 있는 것이다. 그가 바로 이 세상에 재난과 파괴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하나님의 좋으신 성품을 곡해시켜서 마치 이러한 고통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오해케 만들어 인간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창조하셨는가?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질문이 생긴다. 사단이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창조하셨는가? 라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창조하셨다면 결국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하는 일이 아닌가? 사람들은 흔히 사단을 불타는 지옥에서 부터 올라오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존재로 상상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원래는 천사였었으며 하늘에서 부터 내어 쫓김을 받은 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누가복음 10:18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마귀가 원래 하늘에 있었으며 하늘에서 하나님을 반역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또한 이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계 12:7~12 참조). 그는 하나님을 억울하게 고소하던 전쟁을 일으켰다가 자기를 지지하던 타락한 천사들인 자기의 부하들과 함께 내어 쫓김을 당한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제22호, 16페이지 참조).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지나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귀를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천사 루스벨을 창조하셨는데, 그가 반역하여 스스로 악한 사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천사들 중에 가장 찬란하고 재주가 있던 자였었다. 에스겔 28장은 그를 "아침 계명성"으로 불리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뜻은 "Light Bearer" 즉, "빛을 가진 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게 되었고 드디어 자기도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 하나님과 비기려고 꾀하게 된 것이다(겔 28:13~17; 사14:12-17 참조). 그는 하나님을 공격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도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해와에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먹어도 괜챦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이기적인 분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전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곡해시키고 거짓으로 고소하여 천사들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도록 은근히 조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파괴시켜서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정신은 마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루스벨이 반역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인류들에게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시어 타락할 가능성을 주셨는가?" 라는 질문이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더라면 이 세상에 고통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바로 선택 할 수 있는 자유 의지의 힘이었다. 자유 의지의 선택력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된다. 마치 로보트처럼 말이다. 로보트는 인격이 없다. 그저 프로그램된대로 행동하는 기계일 뿐이다. 우리를 인간되게 하며 개인적인 인격체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이 자유의지의 힘인 것이다. 로보트는 하나님을 사랑 할 수 도 없고 예배하며 찬송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보트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인격체로 창조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로보트라고 가정하여 보자. 상당히 편리하긴 할 것이다. 청소도 잘하고 빨래도 잘 도와주고 공부도 잘하며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이들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부모들과 진실된 사랑의 관계를 맺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을까? 결코 될 수 없다. 그런 아이들은 그저 프로그램된 기계들에 불과한 것이다. 차라리 가끔 실수를 범하고 청소를 하지 않는다로 할지라도, 천진스럽게 부모의 뺨에다 대고 "아이 러브유"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식의 사랑이 훨씬 낫지 아니한가? 사랑은 프로그램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은 강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과 인간들에게 선택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만이 참된 행복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스벨은 교만하여져서 그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반역하는데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였고, 자기가 우주를 더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법칙과 율법에서 벗어나면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단의 말은 천사들과 인간들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법이나 규율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인줄로 착각하다가 방종과 파멸의 결과를 거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에 문제가 생겼고 반역자 때문에 하늘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드디어 마귀와 마귀를 선택한 악한 천사들이 쫓겨나게 되었고 그들이 바로 악령들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선악간의 전쟁은 이제 곧 끝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죄와 고통의 이유를 밝히시고 죄와 죄의 장본인인 사단을 없애심으로써, 이 세상, 아니 이 우주를 다시 원래의 아름다움으로 회복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실 때에 그것 때문에 반역과 타락의 가능성을 생길 것도 아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위급한 상황이 생길때에 어떻게 대처하실 것이라는 계획도 영원전부터 세워 두신 것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로 가시어 우리들의 반역의 죄값을 대신 지불해 주시고 우리에게 다시 살 기회를 주시는 위대한 희생적 사랑의 계획이었다.
마귀와 악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범죄하였지만, 인류들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쓰라린 고통의 역사를 지나고 나면 이 세상에 다시는 반역이나 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죄와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너무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는 잠간동안 괴로움과 슬픔이 많이 이 세상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죄와 고통이 없는 원래의 에덴 동산으로 회복시켜 주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시며 또한 그 구속의 사업을 날마다 신실하게 진행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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